가연성 물질이 존재하는 산업현장에서는 전기·기계 장비가 발화원이 되어 폭발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석유·가스 시설, 화학 공장, 분진 발생 공장 등에서는 이러한 위험이 일상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방폭(防爆)” 개념이 중요한데, 이는 폭발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과 규정을 포괄한다. 실제로 국내외 법규, 예를 들어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관리법, 고압가스안전관리법 등은 가연성 물질 취급 시 방폭 설계를 적용하고, 안전성을 증명한 인증 기기를 사용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현장에서는 방폭 관련 용어를 자주 마주하게 된다. Zone, EPL(Equipment Protection Level), IP 등급, 내압 방폭(Ex d), 안전증대 방폭(Ex e), 본질안전 방폭(Ex i) 등 다양한 표현이 혼재하는데, 이를 정확히 이해해야 올바른 방폭기기를 선택하고 유지·보수를 진행할 수 있다. 여기서는 방폭 분야의 대표적인 용어와 각 등급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방폭의 기초 개념
방폭(防爆)의 의미
“방폭”은 문자 그대로 ‘폭발을 방지한다’는 뜻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가연성 물질(가스·분진·증기 등)과 산소, 점화원(스파크·열 등)이 동시에 존재하여 폭발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점화원을 원천적으로 통제해 폭발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기술적·제도적 장치를 의미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내압 방폭, 안전증대 방폭, 본질안전 방폭 등 여러 방식이 있으며, 모두 가연성 물질과 점화원이 직접 접촉하지 않도록 설계된 구조와 엄격한 인증 기준을 갖춘다.
방폭기기와 인증
폭발 위험 장소에서 사용하는 전기·기계 장비를 “방폭기기(Explosion-Proof Equipment)”라고 부른다. 방폭 성능을 갖추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보통 국제 규격인 IECEx나 ATEX(유럽), 그리고 국내의 KOSHA(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인증 절차를 거친다. 기기의 구조·재질·내압성·전기적 안전성 등에 대한 다양한 시험을 통과해야만 “방폭 등급” 또는 “방폭성능”을 표시할 수 있다.
Zone 분류 (위험지역 구분)
현장에 존재하는 가연성 가스나 분진은 그 양과 분포 빈도에 따라 폭발 위험도가 달라진다. 국제 전기기술위원회(IEC)와 유럽 표준(EN)에서는 이를 “Zone” 개념으로 정의한다. 한국에서도 방폭 적용을 위해 Zone 분류 방식이 일반적으로 쓰인다.
1) 가연성 가스·증기·안개(IEC 60079-10-1 기준)
- Zone 0: 가연성 물질이 지속적(1,000h 이상/년) 혹은 장기간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구역
- Zone 1: 정상이든 비정상이든 가연성 물질이 자주(10~1,000h/년 수준)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구역
- Zone 2: 일반적으로는 가연성 물질이 존재하지 않지만, 설비 이상·누출 등의 비정상적 상황에서 짧은 시간(10h 미만/년) 동안만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구역
2) 가연성 분진(IEC 60079-10-2 기준)
- Zone 20: 폭발성 분진이 공기 중에 지속적 또는 잦은 빈도로 존재
- Zone 21: 평상시 공정 과정에서 자주 분진이 발생하나, Zone 20보다는 비교적 적은 시간 노출
- Zone 22: 정상 공정에서는 분진이 거의 없지만, 설비 이상 등 비정상적 상황에서 일시적으로만 존재
이처럼 Zone 번호가 작을수록 폭발 위험도가 높아 “보다 높은 등급의 방폭장비”가 요구된다. 예컨대 Zone 0 및 Zone 20은 최상위 안전성을 요하므로 내압 방폭(Ex d)이나 본질안전(Ex i) 같은 높은 보호방식을 적용하는 사례가 많다.
아래는 가스/증기 Zone에 대한 간단한 표이다.
구분 | 정의 | 예시 |
---|---|---|
Zone 0 | 1년 중 대부분 시간에 걸쳐 가연성 가스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 | 유류 탱크 내부, 지속적으로 누출되는 파이프 내부 |
Zone 1 | 평상시 또는 잦은 작업으로 인해 가연성 가스가 종종 발생하는 곳 | 밸브 주변, 정기적 배출이 있는 곳 |
Zone 2 | 정상 상태에서는 가연성 가스가 거의 없지만, 이상 시에만 일시적으로 발생 | 유지보수 시 누출, 파이프 결함 발생 시 |
EPL(Equipment Protection Level)
방폭기기에 부여되는 “보호등급”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Zone 분류와 EPL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EPL은 각 기기가 어떤 위험구역(Zone)에서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는지를 나타내며, IEC 60079-0 표준에서 정의한다.
1) EPL과 Zone 간 관계
- Ga/Gb/Gc: 가연성 가스 환경에 사용 가능한 방폭기기의 등급
- Ga (Zone 0 대응 가능)
- Gb (Zone 1 대응 가능)
- Gc (Zone 2 대응 가능)
- Da/Db/Dc: 분진(Dust) 환경에 사용 가능한 방폭기기의 등급
- Da (Zone 20 대응 가능)
- Db (Zone 21 대응 가능)
- Dc (Zone 22 대응 가능)
등급에서 G는 Gas, D는 Dust를 나타낸다. a > b > c 순으로 보호 수준이 강화되어 있다. 따라서 Zone 0(또는 Zone 20) 같은 높은 위험도 구역에서는 Ga(또는 Da) 등급 기기를 써야 하고, Zone 2(또는 Zone 22)처럼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구역에서는 Gc(또는 Dc) 등급 기기를 선택해도 무방하다.
2) EPL 예시
- Ex db IIB T4 Gb: 내압 방폭(Ex d), b(입력 보호방식), 가스 그룹 IIB, 온도등급 T4, EPL이 Gb → Zone 1까지 사용 가능
- Ex ia IIIC T200 Da: 본질안전 방폭(Ex i), a(최고 보호등급), 분진 그룹 IIIC(도전성 분진 포함), 온도 등급 T200, EPL이 Da → Zone 20에서 사용 가능
이처럼 EPL 표기는 방폭 성능과 사용 가능한 구역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 준다.
방폭 관련 다른 주요 용어
온도 등급(T-Class)
방폭기기의 표면 온도 한계를 나타낸다. 폭발성 가스나 분진이 점화되기까지 필요한 최소 발화온도 이하로 기기를 운전하도록 설계해야 하며, 이를 T1 ~ T6 등급으로 표시한다. 예를 들어 T4는 기기의 표면 최고 온도가 135℃를 넘지 않도록 제한한다.
가스 그룹(Gas Group)
가연성 가스는 폭발 범위와 발화 에너지가 상이하다. 이를 Group I, II(A/B/C)로 나누는데, IIA는 프로판 계열 가스, IIB는 에틸렌 계열, IIC는 수소·아세틸렌 등 가장 폭발 위험도가 높은 가스군을 의미한다. 분진도 IIIA, IIIB, IIIC로 구분되어, 알루미늄 분진 등 도전성 물질은 IIIC 그룹에 속한다.
내압 방폭(Ex d)
기기 외함 내부에서 폭발이 일어나더라도 외부로 폭발이 전파되지 않도록 하거나, 외함이 폭발 충격에 견디도록 만든 구조다. 주로 Zone 1 또는 Zone 0에서 많이 적용되며, 비교적 두껍고 무거운 구조가 필요하다.
안전증대 방폭(Ex e)
내압 방폭에 비해 외함 자체가 폭발을 견디는 구조는 아니지만, 내부 전기 부품의 온도 상승이나 아크 발생을 억제하도록 설계하여 폭발 위험을 줄이는 방식이다. 주로 Zone 1 또는 Zone 2에서 사용한다.
본질안전 방폭(Ex i)
회로에 유입되는 전기 에너지를 극도로 낮추거나 제한하여, 스파크나 과열로 점화가 일어날 수 없는 수준으로 제어하는 방식이다. 측정 장비나 센서, 제어 시스템 등에 활용하기 좋다.
압력 방폭(Ex p)
보호구역 내부에 압축 공기 또는 불활성 가스를 주입해, 외부의 가연성 물질이 들어올 수 없도록 유지하는 방식을 말한다. 대형 제어반이나 분석 장비 등에서 사용한다.
Zone과 EPL 선택 실무 예시
- 폭발 위험 구역 파악
작업 환경을 조사해 가연성 물질 종류(가스인지 분진인지)를 분류하고, 얼마나 자주·오랫동안 노출되는지 기록한다. 예를 들어 정유공장의 원유 탱크 인근은 Zone 0, 가공 라인의 밸브 주변은 Zone 1, 누출 가능성이 희박한 배관 라인은 Zone 2가 될 수 있다. - 물질 특성 파악
해당 구역에서 취급하는 물질이 프로판, 에틸렌, 수소, 금속 분말 등 어느 그룹에 속하는지 확인한다. 그룹이 IIC나 IIIC라면 방폭기기 선택 시 최고 등급의 내압 성능이 필요할 수 있다. - EPL 조합 설정
Zone 0이니 Ga 등급(또는 Da 등급)을 써야 하는지, Zone 1이라 Gb 등급이면 되는지 결정한다.- Zone 0 → Ga
- Zone 1 → Gb
- Zone 2 → Gc
(분진의 경우 Da, Db, Dc)
- 온도등급(T-Class) 고려
취급 물질의 발화온도를 확인한다. T4 (표면온도 135℃ 이하)면 충분한지, T6 (85℃ 이하)까지 내려야 하는지 판단한다. - 구체적 방폭 타입 선정
내압 방폭(Ex d), 안전증대(Ex e), 본질안전(Ex i) 등, 설비 종류와 Zone에 맞춰 알맞게 선택한다. - 적절한 인증 제품 선택
국내외 인증(IECEx, ATEX, KOSHA)의 방폭등급 라벨을 꼼꼼히 확인하고, 사업장 특성에 부합하는지 재확인 후 설치한다.
현장 적용 시 주의사항
- 정기점검: 방폭 성능은 설치 후에도 유지되어야 한다. 외함의 흠집, 케이블 글랜드의 손상, 실링재 경화 등으로 인해 폭발 방지 기능이 약화될 수 있으므로, 주기적인 확인과 재인증이 필요하다.
- 교육: 작업자들은 Zone 분류와 방폭기기 유형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무심코 일반 전기기기를 구역 내에 반입하거나, 방폭 구조물을 임의로 개방하면 위험하다.
- 접지/정전기 관리: 분진이나 액체가 유동하면서 발생하는 정전기도 폭발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반드시 접지 시스템을 점검하고, 정전기 발생을 줄이기 위한 대책(제전기, 접지 클램프 등)을 도입한다.
- 배선 및 보호기기 선택: 배선도 방폭 요건을 충족해야 하며, 케이블 글랜드나 방폭 덕트 등 연결 부품도 폭발 방지 사양을 만족해야 한다. 퓨즈나 차단기도 방폭 인증 제품을 사용하도록 주의한다.
- 문서 관리: 설치 도면, 인증 문서, 점검 기록 등을 체계적으로 보관해야 법적 요구 사항을 충족하며, 추후 유지·보수 시 용이하다.
방폭 관련 등급 표 (정리)
아래 표는 현장에서 자주 언급되는 방폭 등급 표기를 간단히 요약한 것이다.
구분 | 예시 표기 | 설명 |
---|---|---|
보호방식 | Ex d, Ex e, Ex i 등 | 내압(d), 안전증대(e), 본질안전(i), 압력(p), 몰딩(m) 등 다양한 방식 |
가스 그룹 | IIA, IIB, IIC | IIC가 가장 위험도가 높은 가스 그룹(수소, 아세틸렌 등) |
분진 그룹 | IIIA, IIIB, IIIC | IIIC가 도전성 분진(금속 분말 등) 포함, 가장 엄격한 관리 필요 |
온도 등급 | T1 ~ T6 | T6가 가장 낮은 온도(85℃ 이하)로 제한, 위험도가 가장 높은 환경에 적용 |
EPL | Ga, Gb, Gc / Da, Db, Dc | Ga/Da는 Zone 0/20 사용 가능, Gb/Db는 Zone 1/21, Gc/Dc는 Zone 2/22 |
실제 적용 사례
석유화학 공장에서 Zone 1 구역의 펌프 모터를 교체할 때, 기존에는 Ex d IIB T4 Gb
사양을 사용했지만, 새로운 라인 확대 후 온도등급을 더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측정 결과 발화온도가 낮은 물질이 추가로 다뤄졌기 때문에 T6를 만족하는 방폭기기를 선택해야 했다. 결국 Ex d IIB T6 Gb
또는 Ex d IIC T6 Gb
등급 제품이 필요해져, 추가 비용이 발생했지만 안전 측면에서 불가피한 조치였다. 이러한 사례는 Zone 분류 업데이트, 물질 특성 변화, EPL 재검토, 온도등급 재설정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예로, 분진 폭발 위험이 큰 제분 공장에서는 작업 구역별로 Zone 20, 21, 22를 재분류하고, 본질안전(Ex i) 타입의 센서와 내압 방폭(Ex d) 타입의 조명기기를 혼합 배치함으로써 안전사고를 줄였다. 특히 분진은 공기 중에 부유하다가 작은 스파크 하나로도 대형 폭발을 유발할 수 있어, 적절한 방폭 기기를 선택하는 것만큼이나 환기 시설 확충과 분진 퇴적 관리가 중요하다.
방폭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Zone 분류와 EPL, 그리고 온도등급·가스 그룹·분진 그룹 같은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단순히 “방폭 제품이면 안전하다”라고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업장이 어떤 Zone에 속하며, 취급 물질의 특성이 어떠한지, 어느 온도등급까지 필요한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 최적의 방폭기기를 선정하고, 정기점검과 유지·보수를 성실히 수행한다면 폭발 사고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관련 법규 준수와 더불어 안전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